공존자 선언

 우리는 이미 공존하고 있다.

 공존은 우리가 언젠가 이루어야 할 이상도, 선의를 가진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윤리적 태도도 아니다. 공존은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에 선택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를 처음부터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타인의 돌봄과 노동, 언어와 기억, 제도와 문화, 자연과 시간 위에 놓인다. 인간은 국적과 계급, 성별과 직업, 신념과 이념, 능력과 소유로 규정되기 이전에 이미 인간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규정들은 한 사람의 삶을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존재의 자격을 결정할 수는 없다. 어떤 이름도 인간의 존재보다 앞설 수 없다.

 인간은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다른 존재들과 관계를 맺은 뒤에야 비로소 공존하는 것이 아니다. 관계를 선택하고 사회를 이해하기 전부터 이미 공존 속에 놓여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의 노동이 나의 하루를 가능하게 하고, 내가 무심코 내린 선택은 내가 만나지 못한 사람의 삶과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서로를 좋아하지 않아도 우리는 같은 사회와 제도, 공간과 자원, 환경과 시간을 나누며 살아간다. 공존은 윤리가 아니라 사실이며,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 앞에 놓인 질문은 함께 존재할 것인가가 아니다. 어떻게 함께 존재할 것인가이다. 


 공존은 갈등이 해소된 뒤에 선택할 수 있는 합의가 아니다. 공존은 갈등 이전에 우리가 나누어야 할 전제다. 인간 사회에서 갈등은 사라지지 않으며, 차이는 제거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과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의견이 갈라지기 이전부터 이미 같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공존은 갈등을 감추는 침묵도, 부당함을 견디라는 요구도, 차이를 지우고 모두가 같아져야 한다는 명령도 아니다. 공존은 서로 다른 존재들이 차이를 없애지 않은 채 함께 살아갈 관계와 제도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일이다. 


 공존자는 사회에 함께 존재함을 인정하고 공존을 모색하는 시민이다. 상대방의 주장에 동의하기 전에 그가 이 사회에 함께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한 사람을 하나의 발언과 정체성, 실패와 과오만으로 완전히 설명하거나 지우려 하지 않는다. 공존자는 비판을 포기하지 않는다. 거짓은 거짓이라고 말하고, 부당한 권력은 감시하며, 공동체를 해치는 행동에는 책임을 묻는다. 그러나 비판의 목적을 사람의 제거에 두지 않는다. 공존자는 적을 만들기 위해 문제를 말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를 말한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더욱 심화되었고 계급 갈등은 더욱 커졌다. 부와 자원은 더 빠르게 집중되며, 노동과 주거, 교육과 문화, 건강과 정보에 접근하는 조건은 한층 불평등해졌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는 불평등의 확대에만 있지 않다. 그 모순을 공동체의 언어로 논의하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 구조 자체가 더 큰 위기다. 사회의 모순을 말하면 진영으로 분류되고, 불평등을 말하면 개인의 시기와 무능으로 치부되며, 구조를 말하면 개인의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구조의 문제는 개인의 도덕성으로 환원되고, 공동체의 책임은 각자의 생존 능력으로 떠넘겨진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이해를 위한 시간은 줄어든다. 연결은 많아졌지만 관계는 약해지고, 분노와 혐오는 빠르게 유통되지만 모순을 이해하기 위한 긴 대화는 사라진다. 정치와 언론, 플랫폼과 알고리즘은 갈등을 조정하는 것보다 확대할 때 더 많은 관심과 이익, 권력을 얻는다. 우리는 단지 갈등이 많은 시대를 사는 것이 아니다. 갈등을 생산하고 소비하며 재생산하는 구조 속에서 살아간다. 이 구조는 시민이 사회의 모순을 함께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서로의 고통을 경쟁하게 만들며, 공동의 문제를 개인 사이의 적대로 바꾼다. 


 정치는 시민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시민은 더 많은 정보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문제를 스스로 판단하고 논의할 능력을 갖추어 가고 있지만, 정치와 행정은 여전히 시민을 통치와 관리의 대상으로 대한다. 선거에서는 시민의 결정을 요구하면서도 선거가 끝나면 정치와 행정에 참여할 통로를 좁힌다. 참여를 말하지만 결정은 이미 내려져 있고, 의견을 수렴하지만 권한은 나누어지지 않는다. 시민의 언어는 참고 자료가 되고, 행정의 언어는 결정이 된다. 


 주민자치회와 각종 참여 기구 역시 시민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돌려주지 못한 채 행정의 사업을 보조하거나 이미 정해진 결정을 승인하는 허울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주민이라는 이름은 필요할 때 호출되지만, 예산과 정책, 공간과 제도를 결정하는 권한은 좀처럼 나누어지지 않는다. 시민은 공동체의 주권자라 불리면서도 실제로는 정책의 수혜자와 민원의 당사자로 축소된다. 


 공존자는 이러한 구조를 인정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투표일 하루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시민은 정치와 행정의 고객이나 손님이 아니라 공동체를 구성하고 결정하는 주체다. 공존자는 대표자를 선출한 뒤 자신의 권한과 책임을 모두 넘겨주는 시민이 아니다. 선거 이후에도 질문하고 참여하며, 기록하고 감시하고, 공동의 결정을 요구하는 시민이다. 정치는 시민을 대신해 모든 결정을 독점하는 일이 아니라 시민의 판단과 참여가 가능하도록 정보와 권한을 나누는 일이어야 한다. 행정은 시민을 설득하고 동원하는 기관이 아니라 시민이 공동체의 문제를 함께 결정할 수 있도록 제도와 시간, 정보와 권한을 보장하는 장치여야 한다. 


 우리는 공동체에 반하는 모든 권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공동체를 저해하고, 시민의 참여를 막으며, 사람과 사람을 분열시키고, 공존 자체를 부정하는 권력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권력은 스스로 발생하거나 스스로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권력은 공동체가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잠시 위임한 책임이다. 그러므로 권력을 쥐려는 자는 스스로 자신을 가장 건강한 방식으로 증명해야 한다. 


 더 큰 목소리와 더 강한 적대, 더 많은 재산과 더 높은 지위는 권력의 자격을 증명하지 못한다. 권력을 원하는 사람은 얼마나 잘 듣는지, 얼마나 정확히 사실을 판단하는지, 자신의 오류를 얼마나 솔직하게 인정하는지, 약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살피는지, 자신에게 집중된 권한을 얼마나 시민에게 돌려줄 수 있는지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공동체보다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 더 큰 책임을 위임받은 사람이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갈등을 이용하고, 시민을 적과 동지로 나누며, 허위와 공포로 판단을 흐리는 권력은 이미 정당성을 잃었다. 권력은 시민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의 정당성은 그것이 공동체의 공존을 지키는지, 시민의 자유와 참여를 확장하는지, 다음 세대의 가능성을 훼손하지 않는지에 따라 끊임없이 검증되어야 한다. 


 자유란 인간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모든 것의 가능을 말한다. 자유는 외부의 간섭이 없는 상태만을 뜻하지 않으며, 개인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행할 수 있는 권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생명과 안전, 존엄과 관계, 주거와 노동, 교육과 문화, 자연과 기억, 표현과 참여가 가능할 때 자유도 가능하다. 


 굶주린 사람에게 수많은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말할 수 있지만 누구도 들을 수 없는 사회에서 표현의 권리는 충분한 자유가 아니다. 참여할 권리가 명시되어 있으나 실제 결정에 접근할 수 없다면 그것 역시 완전한 자유가 아니다. 자유는 형식적 권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인간의 존재와 선택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이 함께 보장될 때 비로소 자유가 된다. 


 나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와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타인의 존재가 무너질 때 나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던 사회의 조건도 함께 무너진다. 누구도 타인의 존재 가능성을 빼앗으며 자신의 자유를 완성할 수 없다. 공존은 자유를 제한하는 원리가 아니라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공존자는 자신의 자유를 지키는 일과 다른 사람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일을 서로 다른 과제로 보지 않는다. 


 다양성은 다채로움이다. 다양성은 서로 다른 정체성을 분류하고 나열하는 행정적 언어가 아니다. 인간과 공동체가 본래 하나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속도와 기억, 감각과 경험, 관계와 조건을 지닌다. 다름은 예외가 아니라 사회의 본래 모습이며, 공존자는 다양성을 감수해야 할 불편함이 아니라 공동체를 넓고 깊게 만드는 다채로움으로 이해한다. 


 하나의 생각만 허용되는 사회, 하나의 방식으로만 성공을 정의하는 사회, 하나의 삶만 정상으로 인정하는 사회는 지속될 수 없다. 숲이 하나의 나무로 이루어질 수 없듯 공동체 역시 하나의 계층과 문화, 하나의 언어와 가치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다양성은 장식이나 시혜가 아니라 공동체의 생존 조건이다. 공존은 이 다채로움이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함께 지속될 수 있도록 관계와 제도를 만들고 고쳐 가는 일이다. 


 사회는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만의 계약이 아니다. 사회는 이전 시대, 이전 세대와의 공존이다. 우리는 앞선 사람들이 만든 언어와 제도, 길과 건물, 문화와 기억, 성취와 실패 위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누리는 권리와 자유 역시 이전 세대의 질문과 투쟁, 희생과 실패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과거는 사라진 시간이 아니라 현재를 구성하는 공존의 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기억하고, 사라지는 장소를 기록하며, 이름 없이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남기는 일은 취향이나 보존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사회가 누구의 삶과 노동 위에 세워졌는지를 확인하는 현재의 책임이다. 기록되지 않은 존재는 쉽게 지워지고, 말해지지 않은 삶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취급된다. 공존자는 크고 유명한 사건과 인물만을 기록하지 않는다. 사라지는 골목과 오래된 시장, 노동하는 사람의 손과 이름 없는 시민의 기억, 실패한 시도와 미완성의 목소리를 남긴다. 


 기록은 과거를 박제하는 일이 아니다. 현재를 더 넓게 이해하고 미래가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남기는 일이다. 기록은 공존의 실천이며, 기억은 공동체가 누군가의 존재를 함부로 지우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미래는 다음 세대와의 공존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도 우리가 사용하는 자연과 자원, 제도와 문화, 도시와 기억의 이해관계자다. 공존자는 미래를 자신의 소유처럼 결정하지 않는다. 다음 세대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현재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고갈시키고, 재정과 부채를 떠넘기며, 공간과 자원을 지금 세대의 욕망에 맞게 소진하는 것은 미래와의 공존을 거부하는 일이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완성된 답을 남기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질문할 수 있는 기록, 선택할 수 있는 자원, 고칠 수 있는 제도,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여백을 남기려 한다.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미래를 대신 결정하거나, 현재의 가치와 질서를 영원한 것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공존자는 미래를 통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을 지키는 사람이다. 


 공존은 실천이자 행동이다. 마음속의 선의와 아름다운 구호만으로 공존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끝까지 듣는 일, 모른다고 말하는 일, 사실을 확인하는 일,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는 일, 다른 사람의 경험을 함부로 일반화하지 않는 일, 공동체의 결정에 참여하는 일, 권력을 감시하는 일,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는 일, 말하기 어려운 존재에게 자리를 나누는 일, 다음 세대의 선택을 위해 여백을 남기는 일이 모두 공존의 행동이다. 


 공존자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공존을 이미 완성한 사람도 아니다. 공존을 계속 모색하는 사람이다. 실패하면 다시 배우고, 틀리면 고치며, 자신이 가진 권력과 편견을 의심한다. 공존은 타고난 성품이 아니라 연습이고 반복이며 공동의 기술이다. 공존자는 공존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공존을 연습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세상을 적과 동지, 선과 악, 승자와 패자, 우리와 그들만으로 나누는 질서를 거부한다. 이러한 구분이 정치적 판단을 위해 때로 필요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인간의 존재보다 앞설 수는 없다. 상대방의 생각과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할 수는 있어도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비판은 제거를 위한 언어가 아니라 공동체를 더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행동이어야 한다. 


 공존자의 혁명은 사람을 없애는 혁명이 아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혁명이다. 인간을 이용 가능한 자원이나 표, 소비자와 노동력, 지지자와 반대자, 정상과 비정상으로만 바라보아 온 질서를 뒤집는 일이다.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사회에 함께 존재함을 인정하며, 공존을 모색하는 그 자체가 혁명에 준하는 철학 행동이다. 


 이 혁명은 하나의 거대한 사건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존재를 함부로 지우지 않는 일에서 시작되고, 시민이 정치와 행정의 주체임을 되찾는 일로 이어지며, 권력을 공동체의 책임 아래 다시 놓는 일로 확장된다.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함께 결정하며 미래의 여지를 남기는 모든 행동이 공존자의 혁명이다. 


 우리는 완벽한 사회를 약속하지 않는다. 갈등이 없는 사회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갈등보다 먼저 공존을 기억하는 사회, 권력보다 시민의 존재가 앞서는 사회, 자유가 일부의 특권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모든 것의 가능으로 보장되는 사회, 다양성이 위협이 아니라 다채로움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서로를 착취하지 않고 함께 존재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우리는 선언한다. 


 인간은 규정 이전에 존재한다.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 공존 속에 있다. 

 공존은 선택이 아니라 현실이다. 

 공존은 갈등 이전의 전제다. 

 공존자는 존재를 인정하고 공존을 모색하는 시민이다. 

 자유는 인간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모든 것의 가능이다. 

 다양성은 다채로움이다. 

 사회는 과거와의 공존이다. 

 미래는 다음 세대와의 공존이다. 

 공동체를 해치는 권력은 정당하지 않다. 

 권력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정치는 시민성을 따라야 한다. 

 행정은 시민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기록은 공존의 실천이다. 

 공존은 행동이다. 

 우리는 끝없이 공존을 연습한다.

공존 Prac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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